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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 잔혹한 경고들은 모두 무시됐다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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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살인 미생물과의 전쟁│마이클 오스터홈·마크 올셰이커│김정아 옮김│글항아리

2017년에 쓰여진 책, 올해 ‘코로나 사태’ 섬뜩할 정도로 닮아
발병 이듬해까지 22억 명 감염 · 3억6000만 명 사망 묘사
사스·조류인플루엔자·메르스… 속절없이 당한 인류
수차례 의료진·보건학계의 우려에도 결국 외면해 또‘팬데믹’

“우리가 만약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위협을 반면교사로 삼고 앞으로 일어날 위기의 전조로 받아들였다면, 지금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까?”

미국 미네소타대 감염병연구·정책센터장으로 지난 40여 년간 인류가 겪은 주요 감염병과의 전쟁 최전선에서 싸워 온 마이클 오스터홈은 최근 출간된 ‘살인 미생물과의 전쟁(원제 ‘Deadliest Enemy’)’ 2020년 판 서문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2002년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시작해 캐나다까지 번진 사스, 2009년 멕시코에서 시작해 세계를 강타한 조류인플루엔자, 2012년 아라비아 반도를 휩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21세기에 들어서도 반복적으로 호흡기성 감염병에 시달린 인류가 또다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속절없이 난타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문제는 우리가 웬만해서는 공중보건을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진단에서는 엄청난 희생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데 대한 분노마저 느껴진다.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분노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2017년에 쓰였음에도, 저자는 마치 코로나19 사태를 예견한 것처럼 우려와 경고를 쏟아냈다. 특히 20세기 최악의 감염병으로 기록된 1918년 독감(일명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와 같은 독성을 지닌 독감의 세계적 대유행을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는 코로나19 사태 전개와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첫 발병 장소인 중국 우한(武漢)이 상하이(上海)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독감(H7N9) 바이러스로 묘사됐다는 것 정도다.


가상 시나리오에 따르면, 처음 상하이 지역 의사들은 환자들이 단순한 계절성 독감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감이 수그러들어야 할 4월 중순에도 변화는 없고, 의사들은 그제야 환자 수백 명에게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매달 닭 수백만 마리가 부화하고 자라고 소비되는 상하이에서 유전자 재편성을 통해 H7N9라는 인수공통 전염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어떤 백신도 듣지 않고, 두 달이 채 안 된 5월 말에는 적어도 72개국에서 환자와 사망자가 급격히 는다. ‘세계의 공장’ 격인 중국이 타격을 받으면서 미국 병원은 N95 마스크가 바닥난다. 7월 첫 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독감이 수그러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나, 불과 두 달 뒤 2차 유행이 선포된다. 이 시나리오에서 독감이 수그러드는 시기는 다음 해 6월. 이때까지 두 차례의 대유행으로 전 세계에 22억2000만 명이 독감에 걸리고, 이 가운데 3억6000만 명이 사망한다. 지난 3월 WHO의 팬데믹 선언 후 이 책이 왜 다시 아마존닷컴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역주행’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혹자는 “너무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시나리오로 혹세무민한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계와 보건학계가 얼마나 자주 무시무시한 경고음을 냈는지 돌아보면 이들을 탓하기 어렵다. 2014∼2015년 서아프리카에 에볼라 집단 발병 이후 유엔과 WHO, 미국 국립의학아카데미, 미국 하버드대 국제보건연구원, 영국 런던 위생·열대 의학대학원 공동연구단 등이 사태 대응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보고서를 쏟아냈지만, 이들 대부분은 서랍 속에 처박혔다. 당시 미국 에볼라 대응 조정관으로 일했던 론 클레인은 나아가 미국이 이런 질병에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다고 꼬집으면서 “다음 대통령 임기 중 어느 시점에 국가안보팀이 대통령 집무실에 소집돼 역사에 남을 규모의 세계적 유행병이라는 재앙을 논의하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고 했다. 그의 경고는 코로나19 국면에서 현실이 됐다. 저자가 이끄는 미네소타대 감염병연구·정책센터는 지난 1월 20일 이번 바이러스가 세계적 유행병을 일으킬 것이라고 밝혔지만, WHO의 팬데믹 선언은 3월 11일에야 이뤄졌다. 이는 많은 국가와 지도자가 바이러스 억제력을 오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정책으로 반영되지 않았을 뿐 경고의 목소리는 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처음 알린 중국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목소리가 사태 초기에 외면당했던 것처럼.


저자는 “1918년 스페인독감 사태 이후 일어난 변화를 인간과 병원체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거의 모든 변화가 병원체에 더 유리하다”면서 치명적 감염증과 병원체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위기 행동 강령’을 제시한다. 1번 강령은 ‘판도를 바꿀 독감 백신’을 확보해 전 세계 인구에게 접종하라는 것이다. ‘판도를 바꿀 백신’은 매년 새롭게 개발해야 하는 백신이 아니라 10년 정도는 갈 수 있는 범용 백신을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원자폭탄 개발을 목적으로 정부와 과학자, 기업 등이 머리를 맞댔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롤모델로 삼을 것을 주문한다. 이와 함께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의 임무와 범위를 넓히고 지원해 지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에 맞설 백신을 민관이 신속하게 연구, 개발, 제조, 배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사람 감염병과 동물 감염병에 동시에 대응하는 ‘원헬스(one health)’ 접근법을 적용할 것도 주문한다.

책에는 감염병의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다 희생당한 저자의 동료와 공중보건계 종사자들의 사례가 숱하게 나온다. 이들이 말이나 보고서, 행동 등으로 인류에게 외쳐온 핵심 메시지는 인간을 공격하는 위험한 미생물과 병원체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도 외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미 엄청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일으켰지만, 가장 큰 비극은 이 위기를 ‘헛되이’ 흘려보내 교훈을 얻지도, 미래에 대비하지도 못하게 되는 일이다. 오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위험한 미생물이 내일은 세계 곳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16쪽, 1만8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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